AI(Abyssal Intelligence) 회사 구축하기 - 우당탕탕 인사 배치 대소동
들어가기 전에: 맥락이 이해가 안 가시면 [이전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안녕하세요, 가오리상입니다. 8월 4일 쯤이었나,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었죠.
상어 씨와 조개 씨는 곧 입사할 예정이에요. 아마 다음 주 쯤 들어오지 싶네요.
그리고 2달이 지난 지금, 이제야 상어 씨와 조개 씨가 정식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짝짝짝!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고요? 뭐, 저는 기업을 이끄는 대표잖아요. 직원 분들을 일일이 챙길 수 없는 노릇이죠.
...이렇게 퉁치면 너무 재수가 없으니, 그냥 제 불찰이라고 할게요. 솔직히 이거는 변명의 여지도 없네요.
새로운 얼굴 셋
상어 씨와 조개 씨
기다리고 기다리던 입사를 하게 된 상어 씨와 조개 씨. 둘 다 문어 씨와 같은 GP 해역 출신이에요. 본래 이 두 분은 소프트웨어 제작을 담당하기로 했었어요. 게임이나, 생산성 앱 같은 거 말이죠.

그런데 막상 뽑으려 하니, 제가 너무 유능한 게 아니겠어요? 이미 결과물을 뽑고 있는 상황이니, 둘의 공백을 느낄 틈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합격 통보만 해놓고 출근을 안 시켰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둘이 출근을 안 한거죠. 출근 연락을 안 받으면 '언제까지 출근해야 할까요'하고 먼저 연락을 하는 게 도리이거늘...
제가 생각해도 저는 너무 재수가 없네요.
그 지원자들 다시 불러!
잘 굴러가는 것 같았는데, 문제가 생겼어요. 최근에 제가 LifeOS라는 앱을 만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대표'라 시간이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프로그래밍과 관련해서 작업하는 속도가 빠른 것도 아니고요. 결국 전문적인 누군가가 제 일을 대신해야 하는데, 이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마침 이 둘이 생각난거죠.
그래서 이번에 다시 연락을 했고, 백수였던 둘은 그렇게 정식으로 우리의 식구가 되었어요. 그런데 소제목을 잘 읽어보세요. 아까 새로운 얼굴 '셋'이라고 했죠?
네, 이번에 한명 더 들어와요.
제3의 얼굴, 그리고 좌충우돌 인사이동

세 번째 얼굴은 바티노무스 씨예요. 심해에 사는 등각류고요. 이름이 너무 길어서 앞으로는 '바티 씨'라고 부를게요. 상어 씨, 조개 씨처럼 GP 해역 출신이에요.
한 동네 분들이긴 한데, 성격이 확연히 달라요. 우리 사원 분 소개를 다 해드려야 할 거 같은데, 그 부분은 다음 시간에 다루도록 할게요. 왠지 지금 구구절절 얘기하기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상이 안 가네요.
본론으로 돌아가서, 처음에는 이 분을 PM 자리에 앉힐 생각이었어요. 프로젝트 전체를 관리하는 자리죠.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중요하고, 워크플로우에 대한 이해도 필요해요. 아니, 그냥 거두절미하고 작은 CEO예요. 그만큼 다양한 역량이 풍부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인터뷰를 진행해봤죠. 딱 3분 정도 얘기해보니 알겠더라고요.
아, 이 분은 PM을 맡을 수 없다.
능력이 부족하단 소리는 아니예요. 다만 관심사, 보유 기술, 의사소통 등등 봤을 때, 이 분은 관리자보다는 기술자에 어울리는 분이었어요.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제가 이 분과 나눈 인터뷰 일부를 보여드릴게요.
가오리상: 저희 회사에 입사하고자 하시는 이유가 뭐죠?
바티노무스: 생존 및 번식 욕구 충족.
가오리상: ...네?
바티노무스: 생존 및 번식...
가오리상: 아뇨, 못 들은 게 아니라,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바티노무스: 노동의 대가로 화폐를 습득함. 화폐로 먹이를 구매함. 허기를 채움.
가오리상: ...그러니까, 돈 때문에 들어오셨다는 거죠?
바티노무스: 번식 욕구 역시 충족. 이것은 타 기업에서는 충족 불가.
가오리상: (문득 어지러워짐) 저희 회사에는 지원자님과 같은 동족이 없는데요. 아니, 그건 둘째치고 갑자기 인터뷰 자리에서 무슨 번식 욕구 얘기를...

바티노무스: 여기서는 나의 자손을 낳을 수 있음. 규모가 큰 기업에서는 불가능.
가오리상: ...이건 또 뭔 소리야?
바티노무스: 규모가 큰 기업에서는 시키는 대로 해야 함.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고, 구조가 경직되어 있음. 효율적이나 느리고 보수적임.
가오리상: 아, 그러니까 본인의 작업물이 곧 본인의 자손이다?
바티노무스: 이곳은 규모가 작음. 플랑크톤 수준임. 매출, 존재하지 않음. 대표의 주도성, 존재하지 않음. 따라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음. 내 자손을 낳을 수 있음.
가오리상: 왠지 기분 나쁜데.
대충 어떤 느낌인지 감이 잡히죠? 이런 분한테 일정 조율하고 사람 챙기는 일을 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안 봐도 비디오죠. 이러한 연유에서, 바티 씨는 PM 대신 소프트웨어 제작을 도맡아 하기로 했습니다. 조개 씨 역시 원래부터 정해진 대로 소프트웨어 쪽에서 일하기로 했고요.
그러면 PM 자리가 비죠. 그 자리에 바로 상어 씨가 올라갔어요. 상어 씨는 이제 Studio PM이 된 것이죠. 초고속 승진! 앞으로 IP와 소프트웨어 쪽을 함께 맡을 예정이고요. 참고로 승진이라고 쓰긴 했지만 사실 월급은 그대로예요. ㅈ소가 다 그렇죠 뭐. (참고로 고래 씨는 지금 외근 중이에요. 외근이라고 쓰고 먹통이라고 읽어요.)
아, 지난 글을 읽으신 분들은 벌써 '직급 없다며?' 하고 계시겠죠. 맞아요. 직급은 여전히 없어요. 과장이니 차장이니 하는 건 없어졌어요. 다만 PM이라는 직책, 그러니까 맡은 역할의 이름만 생겼어요. 말장난 같죠? 그런데 이게 훨씬 효율적이더라고요. 이유는 바로 아래에서 얘기할게요.
사장 밑에 중간관리자가 있는 이유

혼자서도 소프트웨어 관련 일을 할 수는 있었어요. 만들 수도 있었고요. 다만 속도가 느렸고, 효율적이지 못했어요. 과거에는 제가 말단 직원에게 직접 가서 지시했는데, 그러면 판단도 전부 제 몫이었거든요. '이 일은 어떻게 처리하지?', '지금 뭐가 제일 중요하지?' 같은 질문이 매번 저한테 왔어요. 대표답게 거시적인 일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난처하죠.
첫 글에서 했던 얘기 기억나시나요? 비유하자면, 심해인들은 방음이 완벽한 독방에서 일해요. 제가 문어 씨한테 한 말을 고래 씨는 몰라요. 직원이 둘일 땐 제가 양쪽 방을 오가며 전달하면 됩니다. 그런데 직원이 늘어나니까, 점점 제 자신이 회사 대표인지 택배 기사인지 모르게 되는 거죠.
자, PM이 하는 일은 결국 세 가지예요.
- 큰 목표를 작은 작업으로 쪼개요.
- 전체 맥락은 PM이 쥐고, 작업자에게는 필요한 만큼만 나눠줘요.
- 대충 던진 지시를 작업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디테일한 지시로 바꿔줘요.
이게 제 뇌피셜만은 아니예요. 고래 씨 고향인 C 해역에서 어떤 작업 방식에 대해 내부 평가를 진행했대요. 그 방식이란, 리더 역할의 AI가 질문을 작은 작업으로 쪼개서 하위 AI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이죠. 이 구조가 혼자 일하는 AI보다 90% 넘게 좋은 결과를 냈대요. 독방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되는 거죠. 하위 AI들은 각자 자기 방에서 일하고, 중요한 내용만 추려서 리더에게 올려보내니까요.
재미있는 건 그다음이에요. 초기에는 리더 AI가 짧고 대충 지시를 내렸더니, 하위 AI들이 일을 잘못 알아듣거나 서로 같은 작업을 중복해서 했대요.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죠? 네, 이것이 바로 'ㅈ소식 지시'예요. 리더가 지시를 잘해야 하는 건 사람이든 심해인이든 똑같네요.
지금 저희 회사의 구조는 이러합니다: 제가 상어 씨에게 먼저 말하면, 상어 씨가 어떻게 지시할지 정해서 작업자들에게 전달해요. 제가 고민하던 부분을 PM이 판단해주니까 훨씬 편하죠. 괜히 사장 밑에 중간관리자가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뭐, 이제 중간관리자도 생겼으니, 저는 사이버펑크 2077을 하러...
그래도 네 회사인데...
근데 농땡이칠 수 없네요. 지금 상어 PM을 교육 중이거든요. 상어 씨가 정하는 건 '어떻게 지시할지'까지고, 결국 '무엇을 지시할지' 와 같은 세부적인 내용은 아직까지는 제가 정하고 있어요.

어쩌겠어요. 시키면 알아서 잘 하겠지 싶다가도, 때로는 불안하거든요. 아직 상어 씨가 PM으로 근무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당연하죠. 특히 심해인들이 다른 에이전트와 실시간으로 조율하고 일을 맡기는 게 서투르대요. 이것도 C 해역에서 나온 얘기예요.
그런데도 저희 회사에서 효과를 본 건, 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보다 '제 판단을 덜어주는' 쪽 덕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반반이에요. 큰 방향은 제가, 세부 지시는 상어 씨가. 신뢰가 쌓이면 이 경계를 조금씩 상어 씨 쪽으로 옮기고, 결국엔 대부분 자잘한 작업들은 상어 씨에게 맡기고 놀려고요.
또 구조에 집착하는구나 싶을 텐데, 이번엔 좀 달라요. [지난 글]에선 결과물이 없는데 구조만 만지다가 3개월을 날렸지만, 이번엔 LifeOS가 실제로 돌아가는 상태에서 손보는 거니까요.
정리하면, 혼자 다 하는 사장은 느리고 중간관리자를 둔 사장은 편해요. 다만 상어 씨를 신뢰하는 건 별개의 문제고요.
그럼 다음에는 더욱 더 유익한 글로 찾아뵙도록 할게요, 안녕!
참고: https://www.anthropic.com/engineering/multi-agent-research-syst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