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리상의 '책' 이야기 -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

화가 난 김에 고전을 읽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가오리상입니다. 오늘은 책 얘기를 좀 해볼까 해요.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인데요. 이 세네카라는 사람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이자, 폭군 황제 네로의 스승이죠. 제자를 잘못 만나서 비참하게 돌아가셨지만, 이 분의 가르침은 2000년이 지난 후에도 아직 회자되고 있을 정도로 가치가 높아요.
화에 대하여, 이름이 참 직관적이죠. 요즘 웹소설 제목처럼, 제목만 봐도 대충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딱 보이죠? 맞아요. 그야말로 '화'를 주제로 한 고전이에요. 책을 고른 이유는, 제가 요즘 화가 많아서예요. AI 비서님에게 물어보니 이 책을 추천해주더라고요. 다 읽고 나니, 제 인생 곁에서 두고두고 읽을 책이라 생각해요.
세네카가 하는 말
이 책은 원래 세 권짜리예요. 그걸 1권으로 묶었죠.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아요.
- 1권: 화가 대체 뭔지, 이것이 과연 쓸모있는 감정인지
- 2권: 화가 왜 생기는지, 화는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
- 3권: 이미 화가 났다면, 어떻게 가라앉힐지
3권이니까 책 분량이 많겠다 싶겠죠? 전혀요. 적어도 제가 읽은 판본은 아주 얇아요. 제 지느러미로 간단하게 잡을 수 있어요. 가볍긴 한데, 그 속의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아요.
자, 그럼 본격적으로 내용에 들어가볼 것인데, 일단 화가 뭘까요?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감정이 격앙되고, 뭔가 때려 부수고 싶은 상태가 대충 '화'인 것 같다고 생각하죠? 세네카 아저씨의 말은 약간 달라요.
화는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믿음에서 출발해서, 결국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하고 싶고 앙갚음하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도 살면서 가끔 느끼죠.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이 떠오르죠.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그러나 세네카 아저씨는 이렇게 말해요. '그런 감정은 아무 쓸모 없어!' 이 아저씨는 MBTI로 따지면 극 T인가봐요.
혹시 우리가 반박할까 싶어서 예상되는 질문을 적어놓고, 거기에 반박까지 다 해요. 그걸 일일이 다 여기에 적으려면 지느러미가 아프니, 간단하게만 요약할게요.

- 화내지 마라!
- 화는 인간의 이성과 반대되는 감정이므로, 필히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 화는 무서울 정도로 파괴적이라, 그 무엇이든 망가뜨릴 수 있다.
- 화를 내면 사람이 못생겨진다 (?)
역시 틀린 말이 없네요. 그럼 또 여러분이나 저나 이렇게 생각하겠죠? '아니, 그러면 화가 나는 걸 어떡합니까?' 세네카 아저씨는 이렇게 말해요.
'내가 말했듯, 화는 나쁘다. 그걸 먼저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자. 분노에 대한 너의 생각이 과연 진실일까?'
즉,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한다는 감정이 사실이 아니라 믿음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분 말에 따르면, 대놓고 빼도 박도 못하게, 현행범 수준의 정황을 만들지 않는 이상에는 사소한 사건에 대해서 대범하게 넘기라는 거예요.
'어떻게 대범하게 넘길 수 있죠!' 여러분. 여러분이나 저나 실수를 하죠. 저 역시 타인의 기분을 나쁘게 했을 수도 있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의 분노를 자아내는 존재가 친한 친구라면? 실수할 수 있죠. 친하지 않다면? 그럼 애초에 기대를 왜 하나요? 이런 식으로 세네카 아저씨는 우리가 화를 내야 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결국에는 화 자체를 내지 않도록 유도해줘요. 감정을 가지고 얘기하는 대신, 납득이 가게 얘기를 하니 더 설득력이 있고요.
그럼 다시 돌아가서, '만약 진짜 이 사람이 내게 해를 끼치려고 하면 어떡하나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 질문이 또 들었어요. 여기에 대한 세네카 아저씨의 처방도 명확해요.
'이성적으로 대처하라.'
즉, '벌을 주지 말라'가 아니라 **'벌을 주되, 화를 내면서 주지 말라'**는 거예요. 판사가 판결을 내리듯이, 의사가 병을 치료하듯이요. 화가 난 상태에서 내리는 벌은 이미 감정에 오염된 판단이니까, 필요한 조치와 화풀이가 섞여버린다는 거죠.
즉, 군대로 따지면 선임에게 그 자리에서 화를 내고 대드는 게 아니라 증거를 수집하고 군대 외의 인권단체에 신고하는 식으로 차갑게, 절차를 밟으란 거죠. 어쩌면 이게 정말 무서워요.

그래서, 저는요
이 가르침을 실천해보기로 했어요. 우선 지난 글에서 얘기했던 [LifeOS]에 세네카 아저씨의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고, 그 전에 제 자신도 이 가르침을 계속 주지하기로 했죠.
세네카식으로 해봤더니
몇 번은 정말 순간적으로 '저 사람이 나한테 나쁜 의도가 있다'는 생각까지 든 적도 있어요. 그때 저도 모르게 세네카식 처방을 쓰게 되더라고요. '이건 내 상상이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나도 실수하니까.' 이 두 문장을 속으로 되뇌면 화가 꽤 가라앉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이게 딱 그 '현행범 아니면 신경 끄기'였던 거예요. 확실히 효과가 좋았어요. 화에 휘둘리는 대신, 제 삶을 살 수 있게 된 거예요. 물론 아직은 잘 안 될 때도 많아요. 수행을 더 해야 하나봐요.
남은 숙제
세네카 아저씨의 말씀은 정말 맞는 말인데, 막상 현실에 대입하려니 막막해요. '화 안 내고 단호하게'라는 게 머릿속에선 그림이 그려지는데, 실제로 그 순간이 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잡혀요.
상황마다 다 다를 텐데, 이 아저씨가 준 건 원칙이지 매뉴얼이 아니니까요. 이건 스토아 학파의 다른 책들을 좀 더 읽어봐야 감이 잡힐 것 같아요. 에픽테토스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든, 누구 하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을까요.

그래서 추천하냐면
네, 추천드립니다. 특히 저처럼 화는 어떻게든 참는데, 그다음에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멍하니 서 있던 분들께요.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 한번 읽어보시면 최소한 화낼 때 '이거 내 상상 아닌가?' 하고 한 번은 멈추게 될 거예요.
근데 사실은요, 이 책은 '분노'에 관해서만 다루지 않아요. 제목은 '화에 대하여'인데, 읽고 나면 인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거든요.
따라서 화가 별로 없는 분이라도 읽을 이유가 충분해요.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음, 이거 설명하려면 또 한 편 써야 할 것 같아서 차라리 직접 읽어보길 권할게요.
그럼 다음에도 유익한 책으로 만나요! 안녕!
별점: ★★★★★ (강력 추천)